2009년 06월 27일
체코 남부 모라비아, 홍수...
사진출처: Novinky.cz

24일 비자 찾으러  VSETIN에 갔다가 온천지역인 LUCHACOVICE에 잠깐 들렀다가 돌아오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근래 들어, 체코 스럽지 않게 비가 잦았지만, 워낙에 여름 넘어가는 시점에서 온난전선이랑 한랭전선이 하늘에서 교차하면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가끔씩은 내렸었기 때문에 그날도 그냥 천둥, 번개가 좀 치려니, 생각했다. 
기숙사에 돌아와 있는데 3시간 가량 비가 마구 쏟아졌다. 쏟아지는 비라고 해봐야, 한국 태풍 때 바람과 비만하지야 않기에 그저, '음, 좀 오는군'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쳐대는데 바로 기숙사 옆을 마구 때리기 시작하는 거다. 좀 겁났다. ㅡ,.ㅡ;   창에서 떨어져 방 안쪽에 있는데 전기불도 다아 나가버렸다. 그리고 3시간 후, 비는 개었는데 마른하늘에서 천둥과 번개는 계속 되고 있었다. 창을 열고 내려다보니 ㅡ,.ㅡ; 대략 난감하게 잠겨있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홍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그날 11명이 사망했고, 많은 가축들이 죽어 떠내려가고 집들이 잠기고 파괴되었다. 어떤 가족은 어머니만 지붕위로 올려보낸 뒤, 자식들은 모두 익사했고, 가축 우리에서 죽을까봐 어떻게든 도망가서 살아보라며 문을 열어준 농장에서는 쓸려들어오는 물 때문에 도망도 못간 말들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기숙사 7층에 내 방이 있어, 창 밖을 내려다보는데 홍수에 익숙하지 않은 체코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물을 가로지르며 자동차를 무리하게 운전해서 가더만, 결국 엔진꺼지고 자동차들이 꺼꾸로 떠내려 오더라.
학교 지하층도 전부 잠겼다. 실험실, 램프워킹실, 석고실, 모델링실...등 다 잠겼다. 피해가 꽤 될 것 같다.
기차 철로도 다 잠겨 기차가 운행이 정지되었다.

나중에 신문을 보니, 최근 잦은 비에 땅들이 이미 포화상태로 젖어 있어 빗물들을 흡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흘러드는 많은 빗물들을 강이 소화해내지 못하고 둑이 터져버려 많은 피해가 발생했단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홍수들이 빈번해서 가정과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살았었는데 이후, 비 피해가 점점 줄어들자 사람들이 이런 홍수에 대한 기억들을 잊어버려 강 주변에 집들을 짓기 시작했고, 홍수에 대한 방비시설을 갖추지 않아서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었단다.  
좌우간, 피해가 막심하다. 한국에 살 때 자주 비 피해를 받았던 나로써는 우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한국처럼 TV를 통해 도울 수 있는 시스템(전화를 통해서 기부하는)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차원에서 많은 도움이 있어야되겠다.

PS: 또 하나 안타까운 일 - 새로운 다리 건설로 인해 독일 드레스덴이 유네스코에서 자격 박탈 당했다. 아마도 새 다리가 필요해서 건설했을텐데,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드레스덴의 외관을 흉하게 만들었나보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윈스턴 처칠이 원망스러워진다.
by pinkartsong | 2009/06/27 17:17 | 하루 (Dnes) | 트랙백 | 덧글(2)
2009년 06월 16일
졸업했다.

오늘 졸업장 받고 졸업했다.
참 견디기 힘든 2년이었다. 프라하에서 공부했을 때보다 외로웠고, 훨씬 힘들었었다.
울기도 했고, 원망도 했고... 그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 연애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디럽게 어려웠던 졸업 시험들을 머리털 빠지게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 할 수 있었다. 박수 받았다. ㅋㅋ
이 졸업장으로 한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ㅎㅎ 한국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그저 종잇장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체코에서는? 그래 내가 체코 유리 공장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면 이 졸업장이 컷팅과 인글레이빙 부분에서의 취직 자리는 마련해 줄 것이다.
그리고 작업실을 열 때, 작업에 필요한 전기와 가스, 기계 부분들은 문제없이 나라의 허락을 받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아주 체코에 머물 것인가?
졸업과 함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정말 많이 배웠다. 유리? 하던 것을, 이젠 유리! 라고 말 할 수 있고, 유리 원료부터 다양한 공정과정까지, 수공업부터 기계생산까지 빠싹해졌다. ㅎㅎ 

좌우간, 졸업을 했고, 동기들은 모두 떠난 이 학교를 나는 이 달 말까지 기숙사에 머물면서 이번 학기에 못 다한 개인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비자 문제를 해결할 거고, 그리고......
2달의 휴식 기간을 가진 후, 다시 이 학교로 돌아 온다.
박사과정 시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1년간 이론 수업을 제외한 실기 과정만(유리 부문 중의 다른 전공으로) 받기로 했다. 이것으로 다음 1년간의 비자는 해결된다.(비자를 위한 교장선생과 연마선생들의 다각적 도움의 결과다)

그리고 어쩌면 내년에 체코에서 제일 유명한 유리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화랑주가 내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포트폴리오를 보더니 내년 중 개인전을 잡자는 제안을 해왔다. 팜플렛 구상도 이야기가 오갔고... 두고 볼 일이다.   
한국에서의 전시가 깨지면서 이제는 화랑이라는 곳을 믿지 않기에, 그저 잘 되면 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것이라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이러나 저러나, 이제는 이론이 아닌 작업을 줄기차게 해야하겠다. 당연히 영어와 체코어는 병행해야된다 ㅡ,.ㅡ; 정말 하기 싫은 영어 공부와 체코어 문법 ㅡ,.ㅡ;;;

당분간 해방이고, 방학? 동안 가이드 일만 좀 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체코 사람들 처럼 시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램한다.  

PS: 수업 중 선생이 하는 말들을 다 받아 써야했는데, 틀린 단어와 빼먹은 단어들을 일일이 찾아서 대필을 해준 Krystina와 많은 배려와 격려, 칭찬을 해주시던 테크놀로기에 선생님 Hlozanek, 수업 빼먹으면 찾아다니시던 담임선생님 Mezihorak, 엄마처럼 챙겨주시던 연마실 대빵 선생님 Alena, 힘들 때 용기주며 항상 곁에 있어준 나보다 20살 어린 Jana, 어디선가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슈퍼맨처럼 어려운 일들을 모두 모두 처리 해결해준 연마실 마스터 Lbos, 그리고 Ondra, Pero, 기숙사 사감 선생들, 수위 아줌마 둘(특히 흰머리 아줌마 최고)등... 모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정말 학교의 많은 사람들이 내게 호의적이었고 많은 도움을 줬다.(국어 선생 제외 Konecna 이름도 꼬네츠나가 뭐냐? '끝짱'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정말 1년 내내 저 할머니 선생의 꼬장 때문에 도는 줄 알았다. 새빠지게 체코 문학 공부해서 시험보면 다 맞춰도 A학점을 안줬다. 인종차별자! 저 할머니 덕에 공산시절 체코 문학가와 작품들 내용까지 외운다 ㅡ,.ㅡ; 어쨌든 이제 저 꼬장쟁이 할머니의 수업을 안들어도 된다!)

by pinkartsong | 2009/06/16 04:46 | 하루 (Dnes)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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